존 웨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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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웨튼은 영국의 베이시스트, 보컬리스트, 작곡가로, 1970년대부터 2017년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밴드와 솔로 활동을 통해 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 하드 록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했다. 킹 크림슨, U.K., 아시아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으며, 솔로 앨범과 다른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2017년 대장암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음악적 유산은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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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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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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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케네스 웨튼 |
출생일 | 1949년 6월 12일 |
출생지 | 더비셔 윌링턴, 잉글랜드 |
사망일 | 2017년 1월 31일 |
사망지 | 도싯 주 본머스, 잉글랜드 |
출신지 | 본머스, 도싯, 잉글랜드 |
직업 | 음악가,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
악기 | 베이스 기타, 보컬, 기타, 키보드 |
활동 기간 | 1965년 – 2017년 |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하드 록 팝 록 재즈 퓨전 클래식 록 AOR |
레이블 | E.G. 애틀랜틱 게펜 유니버설 아일랜드 이글 Avalon EMI 킹 레코드 프론티어스 |
관련 활동 | 코르베츠 팔머-제임스 그룹 테트라드 진저 맨 모굴 스래시 르네상스 패밀리 킹 크림슨 록시 뮤직 유라이어 힙 U.K. 잭-나이프 위시본 애쉬 스티브 해켓 밴드 아시아 콴고 |
웹사이트 | JOHNWETTON.com |
대표 악기 | 펜더 프리시전 베이스 존 레거시 |
2. 생애
존 웨튼은 머글 슬래시, 패밀리, 킹 크림슨, 유라이어 힙, U.K., 위시본 애쉬, 아시아, 아이콘 등 다양한 장르의 밴드를 거치며 폭넓은 음악 활동을 펼쳤다. 그는 기교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베이스 연주와 특유의 애수 어린 보컬로 많은 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지만, 아시아 활동이나 솔로 작업에서는 팝적인 감각 또한 뛰어났으며, 이러한 성향은 킹 크림슨이나 U.K. 시절의 곡 작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2. 1. 초기 생애 (1949-1970)
웨튼은 더비셔주 윌링턴에서 태어나 10대 초반에 가족과 함께 남서부의 도싯주 본머스로 이주하여 본머스 학교를 다녔다. 그의 형 로버트는 클래식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자였다.[5] 어린 시절, 웨튼은 형이 집에서 오르간을 연습할 때 페달 건반이 없어 피아노로 베이스 파트를 대신 연주해주곤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바흐의 베이스 라인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베이스 연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2]클래식 음악에 대한 초기 노출에도 불구하고, 웨튼은 형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로큰롤과 R&B로 관심을 돌렸다.[2] 특히 에벌리 브라더스나 섀도스 같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넣게 되었다.[27][28][29] 이후 친구 리처드 파머-제임스와 함께 코르베츠, 파머-제임스 그룹, 테트라드, 진저 맨 등 여러 초기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6]
그가 초기에 참여했던 중요한 밴드 중 하나는 재즈 록 스타일의 모굴 쓰래시였으며, 르네상스와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밴드 패밀리에 합류하여 활동했으며, 다양한 녹음 세션에도 참여하며 경험을 넓혔다.[1]
2. 2. 음악 활동 (1971-2017)
고향인 본머스와 런던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했다. 1971년 모굴 슬래쉬에 가입하여 동명 앨범으로 프로 데뷔를 했다. 모굴 슬래쉬가 데뷔 앨범 발표 직후 매니지먼트 문제로 해산하자 패밀리에 가입하여 앨범 『피어리스』 (1971년)와 『밴드스탠드』 (1972년) 제작에 참여했다.1972년 같은 고향 출신 친구인 로버트 프립에게 발탁되어 킹 크림슨에 합류했다. 1974년 프립이 갑작스럽게 해산을 선언할 때까지 활동하며 3개의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태양과 전율』 (1973년)과 『레드』 (1974년)는 킹 크림슨과 웨튼 모두에게 중요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킹 크림슨 해산 후에는 록시 뮤직의 투어에 준 멤버로 참여[30]했으며, 이후 유라이어 힙에 가입하여 『환상으로의 귀환』(1975년)과 『하이 앤 마이티』(1976년) 두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31].
1976년에는 릭 웨이크먼, 빌 브루포드와 함께 새로운 밴드 결성을 시도했으나, 웨이크먼 소속사였던 A&M 레코드와의 문제로 무산되었다. 이때 작업했던 곡 일부는 브루포드의 솔로 앨범 『필즈 굿 투 미』에 수록되었다[32][33]. 같은 해 브라이언 페리의 솔로 활동에 참여하여 싱글 「렛츠 스틱 투게더」와 EP[34] 제작에 기여했으며[35], 앨범 『인 유어 마인드 (당신의 마음에)』 제작에도 협력했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해당 앨범의 월드 투어에 참여[36]하며 6월 초에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37][38].
1978년 웨튼은 빌 브루포드, 에디 잡슨, 알란 홀즈워스와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U.K.를 결성했다. 밴드는 1980년 해산 전까지 일본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을 포함하여 총 3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U.K. 해체 후인 1980년 웨튼은 첫 솔로 앨범 ''Caught in the Crossfire''를 발매했다. 같은 해 말에는 위시본 애쉬에 잠시 합류하여 1981년 앨범 ''Number the Brave'' 작업에 참여했다.
1981년 말 Geffen Records의 사장 존 칼로너는 웨튼에게 브라이언 페리의 백 밴드 활동보다는 스스로 밴드를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계기로 웨튼은 전 예스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와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고, 키보디스트 제프 다운스와 드러머 칼 파머(전 Emerson, Lake & Palmer)가 합류하면서 슈퍼그룹 아시아가 결성되었다.[1] 아시아의 데뷔 앨범 ''Asia'' (1982년)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 판매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웨튼에게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1983년 두 번째 앨범 ''Alpha''의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Geffen Records의 요청으로 밴드에서 해고되었다.[1] 당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알코올 의존증 문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39] 그는 1985년 아시아에 다시 합류하여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 대신 맨디 메이어가 참여) 세 번째 앨범 ''Astra''를 완성했다.[12]
1986년에는 록시 뮤직의 기타리스트 필 만자네라와 협력하여 앨범 ''Wetton/Manzanera''를 발매했다. 이후 다운스, 파머와 함께 아시아 재결성을 시도했으며 이 시기에 녹음된 곡 중 일부는 1990년 발매된 앨범 ''Then & Now''에 수록되었다. 이 앨범에는 라디오 히트곡 "Days Like These"도 포함되어 있다. 웨튼은 1985년 복귀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1990년대에 들어 웨튼은 주로 솔로 활동에 집중했다. 1999년 아시아 재결합 시도가 무산되자 칼 파머, 존 영, 데이브 킬민스터와 함께 단명한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Qango를 결성했다. Qango는 영국에서 몇 차례 공연을 하고 라이브 앨범 ''Live in the Hood''를 녹음한 뒤 해체했다.

2000년대 초반 웨튼은 제프 다운스와 다시 손잡고 '아이콘(Icon)'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2006년 마침내 오리지널 아시아 라인업(웨튼, 다운스, 하우, 파머)이 재결합했다. 1983년 ''Alpha'' 이후 오리지널 멤버가 함께한 첫 스튜디오 앨범인 ''피닉스''는 2008년 4월에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200 앨범 차트 73위에 올랐다.[13] 이후 아시아는 스튜디오 앨범 ''오메가''(2010)와 ''XXX''(2012)를 더 발표했다. 2013년 1월 스티브 하우가 예스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탈퇴하자 새로운 기타리스트 샘 쿨슨을 영입하여 2014년 3월 앨범 ''그라비타스''를 발매했다.
2013년 웨튼은 42년 전 함께 라이브 공연을 했던 밴드 르네상스의 앨범 ''Grandine il vento''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같은 해 그는 시카고 출신의 ''아메리칸 아이돌'' 결선 진출자 레슬리 헌트가 속한 그룹 District 97과 함께 킹 크림슨의 앨범 ''Larks' Tongues in Aspic'' 발매 4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를 진행했다.
웨튼은 또한 브라이언 이노 (''Here Come the Warm Jets'' 참여), 브라이언 페리, 아리언 등 다양한 음악가들과 세션 뮤지션으로서 폭넓게 활동했다. 그는 머글 슬래시, 패밀리, 킹 크림슨, 유라이어 힙, U.K., 위시본 애쉬, 아시아, 아이콘 등 다양한 장르의 밴드를 거치며 수많은 세션 작업을 소화했다. 그의 기교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베이스 연주와 특유의 애수 어린 보컬은 많은 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했지만 아시아나 솔로 활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팝적인 감각 또한 뛰어났다. 이러한 감각은 킹 크림슨이나 U.K. 시절의 곡 작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아시아 탈퇴 후 솔로 활동 중에도 스티브 해킷, 전 킹 크림슨 동료였던 이언 맥도널드 등과 함께 투어를 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2. 3. 사망 (2017)
2017년 1월, 웨튼은 이전에 진단받았던 대장암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아시아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42]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리사 노자임(Lisa Nojaim)과 결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43] 2017년 1월 31일, 도싯주 크라이스트처치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 병원(Christchurch Hospital) 맥밀란 유닛(Macmillan Unit)에서 잠자는 동안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43] 사인은 대장암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2] 그의 아내, 아들, 형제, 어머니가 임종을 지켰다.[14][15][16]밴드 동료였던 제프 다운스는 "매우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형제, 밴드 동료이자 오랜 음악적 협력자를 잃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 그는 세계 최고의 음악적 재능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며,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으로 완전히 축복받았습니다 [...] 그가 없으면 삶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느끼는 상실감을 표현할 단어는 정말 부족합니다."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17]
웨튼의 빈자리는 그의 2011년 솔로 앨범 ''Raised in Captivity''에서 프로듀서 및 공동 작업을 했던 빌리 셔우드가 맡게 되었다. 2017년 6월 17일, 아시아는 웨튼을 기리기 위해 특별 콘서트 'An Extraordinary Life'를 열었다. 이 제목은 2008년 아시아 앨범 ''피닉스''의 동명 수록곡에서 따온 것이다. (부제: ''An Extraordinary Life – An Interactive Celebration of the Life & Music of John Wetton'') 콘서트에서는 팬들이 제출한 공연 영상이 무대 위의 대형 비디오 화면에 상영되었으며, 일부 킹 크림슨의 곡들도 연주되었다.[18]
2001년 애리조나주 키트 피크 국립 천문대에서 마크 부이가 발견한 소행성 72802 웨튼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19] 이 명명은 2019년 5월 18일 소행성 센터(Minor Planet Center)에서 공식 발표되었다(M.P.C. 114955).[20]
3. 평가 및 영향
존 웨튼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지성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은 종종 노래 가사에 반영되었으며, 그의 삶은 언제나 음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빌리 시언,[21] 더 마스 볼타와 레이서 엑스의 후안 알데레테,[22] 스트라이퍼의 마이클 스위트,[23] 론 앤더슨,[24] 팔베어러의 조셉 D. 롤랜드[25] 등 많은 음악가들이 존 웨튼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존경심을 표했다. 그의 사망 후 에릭 클랩튼은 "For John W."라는 짧은 기악곡을 헌정하기도 했다.[26]
존 웨튼은 머글 슬래시, 패밀리, 킹 크림슨, 유라이어 힙, U.K., 위시본 애쉬, 아시아, 아이콘 등 다양한 장르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는 여러 아티스트와 수많은 세션 작업을 했으며, 특히 기교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베이스 연주와 특유의 애수 어린 보컬로 많은 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 분야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지지만, 아시아 활동이나 솔로 작업에서는 팝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팝 감각은 킹 크림슨이나 U.K. 시절의 곡 작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4. 음반 목록
존 웨튼의 음악 경력 동안 발표된 음반들은 그의 솔로 활동과 여러 유명 밴드에서의 활동을 통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주요 참여 밴드로는 킹 크림슨, U.K., 아시아 등이 있으며, 각 밴드에서 중요한 앨범들을 남겼다.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다수의 정규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으며, 다른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작업도 활발히 진행했다.
자세한 음반 목록은 아래 하위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4. 1. 솔로
1980년부터 사망한 2017년까지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다수의 정규 앨범, 라이브 앨범, 컴필레이션 앨범 및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 앨범을 발표했다.'''정규 앨범'''
연도 | 제목 (원제) | 레이블 |
---|---|---|
1980 | Caught in the Crossfire | E'G / 폴리도르 레코드 |
1994 | Voice Mail / Battle Lines | 포니 캐년 / Magnetic Air Records |
1997 | Arkangel | 이글 레코드 |
1998 | Chasing the Deer (사운드트랙 EP) | Blueprint |
2000 | Welcome to Heaven / Sinister | Avalon Records |
2003 | Rock of Faith | 자이언트 일렉트릭 피 |
2011 | Raised in Captivity | Frontiers Records |
'''라이브 앨범'''
연도 | 제목 (원제) | 레이블 |
---|---|---|
1995 | Chasing the Dragon (Live in Japan) | Eclipse Records |
1996 | Akustika: Live in America | Blueprint |
1998 | Live in Tokyo 1997 | |
Hazy Monet (Live in New York City USA, May 27, 1997) | ||
1999 | Nomansland (Live in Poland) | Giant Electric Pea |
Sub Rosa (Live in Milan July 5, 1998) | Blueprint | |
2000 | Live at the Sun Plaza Tokyo 1999 | |
2002 | One Way or Another (with 켄 헨슬리) | Classic Rock Legends |
More Than Conquerors (with 켄 헨슬리) (CD/DVD) | ||
2003 | Live in Argentina 1996 | Trade Mark of Official Quality |
Live in Stockholm 1998 | Blueprint | |
Live in Osaka 1997 | Trade Mark of Official Quality | |
Live in the Underworld (CD & DVD) | Classic Rock Legends | |
2004 | Amata | Metal Mind Records |
Agenda | ||
2009 | Amorata (DVD) | |
2014 | One More Red Night – Live in Chicago (with District 97) | Primary Purpose |
2015 | Live via Satellite | |
New York Minute (with 레스 폴 트리오) |
'''컴필레이션 앨범'''
연도 | 제목 (원제) | 레이블 | 비고 |
---|---|---|---|
1987 | 'Kings Road, 1972–1980'' | E'G / 버진 레코드 | |
2001 | Anthology | NMC | |
2002 | ...Caught in the Crossfire... | Digimode Entertainment UK | 1980년 데뷔 솔로 앨범과 다른 앨범. Wetton/Manzanera(1987), Battle Lines(1994)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17개 트랙 포함. |
2015 | The Studio Recordings Anthology |
'''콜라보레이션 앨범'''
연도 | 제목 (원제) | 협업 아티스트 | 레이블 |
---|---|---|---|
1987 | Wetton/Manzanera | 필 만자네라 | 게펜 레코드 |
1998 | Monkey Business 1972–1997 | 리처드 팔머-제임스 | Blueprint |
2002 | Wetton Downes (Demo Collection) | 제프 다운스 | |
2005 | Icon | Frontiers Records / Icon (미국) / Avalon Marquee (일본) | |
2006 | Icon II: Rubicon | ||
2009 | Icon 3 |
4. 2. 밴드 활동
본머스와 런던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했다. 모굴 쓰래쉬에 가입하여 동명 앨범 ''모굴 쓰래쉬'' (1971년)로 프로 데뷔를 했다.모굴 쓰래쉬가 데뷔 앨범 발표 직후 매니지먼트 문제로 해산하자 패밀리에 가입하여 앨범 ''피어리스'' (1971년)와 ''밴드스탠드'' (1972년) 제작에 참여했다.
1972년, 같은 고향 친구인 로버트 프립에게 발탁되어 킹 크림슨에 합류했다. 1974년 프립이 갑작스럽게 해산을 선언할 때까지 재적하며 3개의 정규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라크스 텅스 인 아스픽'' (1973년)과 ''레드'' (1974년)는 킹 크림슨과 웨튼 모두에게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킹 크림슨 해산 후에는 같은 EG 레코드 소속이었던 록시 뮤직의 투어에 준 멤버로 참여했다.[30] 이후 유라이어 힙에 가입하여 ''리턴 투 판타지'' (1975년)와 ''하이 앤 마이티'' (1976년) 두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31]
1976년에는 릭 웨이크먼, 빌 브루포드와 함께 '웨이크먼-웨튼 & 브루포드'(가칭)를 결성하여 리허설을 진행했으나, 웨이크먼 소속사였던 A&M 레코드와의 문제로 공식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작업했던 곡 일부는 브루포드의 솔로 앨범 ''필즈 굿 투 미''에 수록되었다.[32][33]
같은 해 6월, 록시 뮤직을 해산한 브라이언 페리의 요청으로 싱글 "렛츠 스틱 투게더"와 4곡짜리 EP[34] 제작에 참여했다.[35] 이어서 페리의 앨범 ''인 유어 마인드'' 제작에도 협력했으며,[36] 1977년 2월부터 시작된 월드 투어에도 참여하여 6월 초에는 한국을 처음 방문하기도 했다.[37][38]
1978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U.K.를 빌 브루포드, 에디 잡슨, 알란 홀즈워스와 함께 결성했다. U.K.는 1980년 해체 전까지 일본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을 포함하여 총 3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1980년 U.K. 해체 후, 웨튼은 첫 솔로 앨범 ''Caught in the Crossfire''를 발매했다. 같은 해 말에는 위시본 애쉬에 잠시 합류하여 1981년 앨범 ''Number the Brave'' 작업에 참여했다.
1981년 말, Geffen Records 사장 존 칼로드너는 웨튼이 브라이언 페리의 백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그가 직접 밴드를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칼로드너의 권유로 웨튼은 전 예스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와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키보디스트 제프 다운스와 드러머 칼 파머 (ELP)가 합류하면서 슈퍼그룹 아시아가 결성되었다.[1] 아시아의 데뷔 앨범 ''아시아'' (1982년)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웨튼은 1983년까지 아시아와 함께 활동했으나, 앨범 ''Alpha'' (1983년)의 판매 부진 등을 이유로 Geffen Records의 요청에 의해 해고되었다.[1] 그는 1985년 아시아에 다시 합류하여 기타리스트 맨디 메이어와 함께 세 번째 앨범 ''Astra''를 완성했다.[12] 당시 알코올 의존증 문제도 해고의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39] 웨튼은 이후 1994년 탈퇴 전까지 아시아의 중심 멤버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록시 뮤직 기타리스트 필 만자네라와 협업 앨범 ''Wetton/Manzanera''를 발매했다. 그 무렵 웨튼은 다운스, 파머와 함께 아시아 재결성을 시도했고, 이때 녹음된 곡 중 일부는 1990년 앨범 ''Then & Now''에 수록되었으며, 싱글 "Days Like These"는 라디오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시아 탈퇴 후에는 주로 솔로 활동에 집중하면서, 스티브 해킷 등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 아티스트들과 협력하거나 투어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전 킹 크림슨 동료였던 이언 맥도널드와도 함께 투어를 진행했다. 2000년대에는 제프 다운스와 함께 '웨튼/다운스' 또는 '아이콘(Ico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여러 앨범과 라이브 기록을 남겼다.
아래는 존 웨튼이 참여한 주요 밴드와 앨범 목록이다.
연도 | 밴드 | 앨범 | 비고 |
---|---|---|---|
1971 | 모굴 쓰래쉬 | 모굴 쓰래쉬 | |
1971-1972 | 패밀리 | 피어리스 (1971) | 영국 14위, 미국 177위 |
밴드스탠드 (1972) | 영국 15위, 미국 183위 | ||
1973 | 킹 크림슨 | 라크스 텅스 인 아스픽 | 영국 20위, 미국 61위 |
1974 | 스타리스 앤 바이블 블랙 | 영국 28위, 미국 64위 | |
레드 | 영국 45위, 미국 66위 | ||
1975 | USA | 라이브, 1974년 6월 녹음 | |
1992 | 더 그레이트 디시버 | 라이브 박스 세트, 1973–1974년 녹음 | |
1997 | 더 나이트 워치 | 라이브, 1973년 11월 23일 녹음 | |
2012 | 라크스 텅스 인 아스픽 (박스 세트) | ||
2013 | 더 로드 투 레드 (박스 세트) | ||
2014 | 스타리스 (박스 세트) | ||
1975 | 유라이어 힙 | 리턴 투 판타지 | 영국 7위, 미국 85위 |
1976 | 하이 앤 마이티 | 영국 56위, 미국 161위 | |
록시 뮤직 | 비바! | 라이브 앨범 (투어 멤버 참여), 영국 6위, 미국 81위 | |
1978 | U.K. | U.K. | 영국 43위 |
1979 | 데인저 머니 | 미국 45위 | |
나이트 애프터 나이트 | 라이브 앨범, 미국 109위 | ||
1999 | 콘서트 클래식스, Vol. 4 | 라이브, 1978년 녹음 | |
2013 | 리유니언 – 라이브 인 도쿄 | 라이브 CD & DVD, 2011년 녹음 | |
2015 | 커튼 콜 | 라이브 CD & DVD, 2013년 녹음 | |
2016 | K: 얼티메이트 컬렉터스 에디션 | 박스 세트 | |
1979 | 잭-나이프 (Jack-Knife) | 아이 위시 유 우드 (I Wish You Would) | 존 웨튼과 W.J. 허치슨의 프로젝트. 독일 드러머 커트 크레스 참여. |
1981 | 위시본 애쉬 | 넘버 더 브레이브 | 영국 61위 |
1982 | 아시아 | 아시아 | 영국 11위, 미국 1위 |
1983 | 알파 | 영국 5위, 미국 6위 | |
1985 | 아스트라 | 영국 68위, 미국 67위 | |
1990 | 덴 & 나우 | 컴필레이션 (신곡 포함), 미국 114위 | |
1991 | 라이브 인 모스크바 1990 | 라이브 | |
2007 | 판타지아: 라이브 인 도쿄 | 라이브 | |
2008 | 피닉스 | 미국 73위 | |
2010 | 스피릿 오브 더 나이트 – 라이브 인 케임브리지 2009 | 라이브 | |
오메가 | |||
2012 | 레조넌스 – 디 오메가 투어 2010 | 라이브, 2010년 녹음 | |
XXX | 미국 134위 | ||
2014 | 하이 볼티지 – 라이브 | 라이브, 2010년 녹음 | |
그라비타스 | 미국 159위 | ||
2015 | 액시스 XXX 라이브 샌프란시스코 | 라이브, 2012년 녹음 | |
2017 | 심포니아: 라이브 인 불가리아 2013 | 라이브, 2013년 녹음 | |
2000 | 콴고 | 라이브 인 더 후드 | 라이브 |
2002 | 웨튼/제프 다운스 (아이콘) | 웨튼/다운스 (2002) / 아이콘 제로 (2017 재발매) | Stallion Records/Epicon Records (2017년 재발매) |
2005 | 아이콘 | Frontiers Records/UMe Digital (US) | |
'히트 오브 더 모먼트 05 EP'' | Frontiers Records | ||
2006 | 아이콘 II: 루비콘 | Frontiers Records | |
아이콘 라이브: 네버 인 어 밀리언 이어스 | 라이브, Frontiers Records | ||
아이콘: 어쿠스틱 TV 방송 | 라이브 (DVD로도 발매), Frontiers Records | ||
2009 | 아이콘 3 | Frontiers Records | |
아이콘: 어반 시편 | 라이브 CD & DVD, Asia Icon Ltd. | ||
2012 | 아이콘: 히트 오브 더 라이징 선 | 라이브, the Store for Music |
4. 3. 협업
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ống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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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etton's Family: 5 Facts You Need to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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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年8月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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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ョン・ウェットン ベースを抱えた渡り鳥
シンコーミュージック・エンタテイメント
2019年2月17日
[30]
문서
このツアーの音源を中心に制作されたライヴ・アルバム『[[VIVA!ロキシー・ミュージック]]』(1976年)には、[[ブライアン・フェリー]]を初めとする正式メンバーと並んでウェットンの名前が記されている。
[31]
문서
ユーライア・ヒープには[[:en:David_Byron|デヴィッド・バイロン]]がリード・ボーカリストとして在籍しており、ウェットンはベースとコーラスを担当したが、アルバム『ハイ・アンド・マイティ』からシングル・カットされた「[[:en:One_Way_or_Another_(Uriah_Heep_song)|ワン・ウェイ・オア・アナザー]]」では、メンバーで同曲の作者である[[ケン・ヘンズレー]](キーボード、ギター、ヴォーカル)とリード・ボーカルを分担した。同アルバムでは2曲をヘンズレーと共作し、[[メロトロン]]も演奏した。
[32]
문서
この時、当時ウェイクマンと[[イエス (バンド)|イエス]]のマネージャーを兼任していた[[ブライアン・レーン]]の秘書のジルと知り合い、後年結婚したが後に離婚した。
[33]
서적
パティ・ボイド自伝 ワンダフル・トゥデイ
シンコーミュージック・エンタテイメント
2008年9月19日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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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s
https://www.discogs.[...]
2024年2月10日
[35]
문서
これらに収録された楽曲は全て、同年9月に発表された彼の3作目のソロ・アルバム『[[レッツ・スティック・トゥゲザー]]』に収録された。
[36]
문서
2月初旬から同年7月末まで行なわれた。
[37]
문서
1977年6月5日と9日中野サンプラザ、6月6日大阪厚生年金会館。メンバーはフェリー(Vo, Key, Harmonica)、ウェットン(B, Vo)、[[クリス・スペディング]](G)、[[フィル・マンザネラ]](G)、アン・オデール(Key, Vo)、[[ポール・トンプソン (ミュージシャン)|ポール・トンプソン]](Dr)、[[メル・コリンズ]](Sax)、マーチン・ドローヴァー(Trumpet)、クリス・マーサー(Sax)。6月9日には中野サンプラザ公演に加えて、渋谷の[[NHK放送センター]]の101スタジオで[[NHK総合テレビジョン|総合テレビジョン]]の『[[ヤング・ミュージック・ショー]]』の公開録画を行なった。放送日は同年9月10日。
[38]
서적
僕らの「ヤング・ミュージック・ショー」
情報センター出版局
[39]
문서
[[グレッグ・レイク]]が代役を務めた。
[40]
웹사이트
ジェフ・ダウンズ&ジョン・ウェットン、ついにデビュー
https://www.cdjourna[...]
音楽出版社
2018-05-22
[41]
뉴스
エイジアのジョン・ウェットンが亡くなったのを受けてジェフ・ダウンズが長文の追悼文を公開
http://nme-jp.com/ne[...]
NME JAPAN
[42]
뉴스
エイジアのジョン・ウェットン、癌治療に専念するため活動を一時休止
https://www.barks.jp[...]
BARKS
[43]
뉴스
エイジアのジョン・ウェットンが死去。享年67
https://rockinon.com[...]
RO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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